서평 - [어린 왕자] 마음 한 구석을 조용히 울리며 따뜻하게 밝혀준다.
서평: 『어린 왕자』 - 길들임, 의례, 사랑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이 책은 인간 존재의 본질, 관계의 의미, 사랑과 책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아름답고 섬세한 문장들 속에는 어른이 된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 중요한 것’이 고요히 숨겨져 있다. 어린 왕자와 여우, 장미꽃, 조종사의 대화를 따라가며 우리는 마음 한 켠 깊은 곳에서 잊고 지낸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내 생활은 단조로워, 그러나 너라면 햇살이 될 수 있어
여우는 단조로운 삶을 살아간다.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고", 반복되는 삶의 고리 안에서 여우는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어린 왕자와의 만남은 그에게 ‘길들임’이라는 선물을 선사한다. 길들임이란 단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존재를 통해 세상의 풍경이 바뀌고, 일상의 리듬이 달라지는 것이다.
여우는 말한다. “너의 발자국 소리는 음악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타인의 존재가 자신의 일상에 빛을 주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는 모든 사랑과 우정의 본질이다. 한 존재가 나의 삶을 밝혀주는 순간, 그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의례가 뭐야? 평범한 날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여우의 이 말은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도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의례다. 우리는 그 의례를 통해 삶의 리듬을 만들고, 감정의 깊이를 축적한다.
사냥꾼들이 목요일이면 마을 처녀들과 춤을 추는 것처럼, 매일이 반복되는 삶에도 특별한 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의례가 있는 삶은, 그 자체로 경이롭고 정성스럽다. 그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모든 날은 흐릿해지고, 삶은 무의미한 반복이 된다. 어린 왕자의 순수한 질문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길들인다는 건 사랑의 책임을 지는 것
어린 왕자는 장미꽃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너희들은 아직 누구도 길들이지 않았고, 누구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어.” 진짜 사랑은 ‘시간’을 들이고, ‘책임’을 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물을 주고, 바람막이를 해주고, 벌레를 잡아주며 함께한 시간 속에서 사랑은 비로소 탄생한다.
사랑은 누가 더 예쁘고 멋진지를 따지는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내가 그를 위해 시간을 쓰고, 마음을 주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상 속에서 깊어진다. 그래서 누군가는, 다른 모든 존재들보다 소중해진다. 그것이 바로 어린 왕자가 말하는 ‘내 장미’의 의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이 문장은 어린 왕자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달빛 아래 잠든 어린 왕자를 안고 가는 조종사의 마음은, 이 문장을 통해 진심, 책임, 사랑, 감정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무게를 보여준다.
세상은 자꾸만 보이는 것, 숫자, 성과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가슴 속에 있는 무언가이다. 어린 왕자의 머리칼, 감긴 눈, 숨결처럼 부서지기 쉬운 존재 앞에서 우리는 조심스러워지고, 그 마음을 등불처럼 지키고 싶어진다. 그 마음을 간직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지도 모른다.
총평 - 어린 왕자가 남긴 것들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정이 밀려드는 책이다. 어릴 때는 여우와 장미의 대화가 신비롭고, 어른이 되어서는 조종사의 시선에서 ‘부서지기 쉬운 존재’의 가치를 더 깊이 느끼게 된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관계는 어떻게 맺어지는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잊지 말아야 할 질문들을 던진다.
사랑은 길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어린 왕자의 순수한 시선과 말들은 우리를 다시 인간답게 만든다. 삶에 지쳐 무뎌졌을 때, 이 책은 마음 한 구석을 조용히 울리며 따뜻하게 밝혀준다. 등불처럼 꺼지지 않도록, 그 감정을 오래 지켜야 한다.